‘청산’과 동행하기 어려운 ‘정리’의 딜레마
김영수(상지대학교)
10년 만이다. 제1기 과거사정리를 위한 진실화해위원의 활동이 마감되고 강산이 한 번 변한 2020년 12월 10일,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과거사 정리로 한국사회의 질적 변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이겨내지 못했던 어려움과 한계들, 특히 ‘미완’이라는 딱지를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떼어내고 ‘계승과 청산’으로 ‘사회의 대전환’이라는 깃발이 펄럭이길 바라는 마음이 엿보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망각 대 기억’의 싸움이 매우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회적으로 망각을 원하거나 강요하는 누군가가 있다. 사회적인 망각의 이득을 누리고 있거나 앞으로 이득을 누릴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권력의 시공간에서 국가폭력의 권한을 자유롭게 행사하면서 과거사정리에도 자신의 힘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기억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고 망각의 벽을 허무는 싸움에 진력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하거나 복원하려는 사람들이다. 피해자나 유가족들에게는 권리를 복원하는 지난한 과정이고, 사회체제의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권리에 대한 ‘무지와 망각의 폭력’에 맞서는 험난한 여정이다. 과거사 재정리는 국가폭력에 대한 대중들의 다층적인 기억을 재현하는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 기억은 망각하려는 힘과 자기화하려는 힘의 대결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청산’이라는 사회적 담론이 국가의 정책으로 쉽게 자리하지 못하나보다. 반민특위가 성공하지 못한 역사적 트라우마인지, 혹은 친일세력이나 부일세력이 권력 시스템을 촘촘하게 승계하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민주화의 주요 전략이 국민통합이어서 그런지, 국가권력은 ‘청산’ 대신에 ‘정리’나 ‘진상규명’을 추구한다. 물론 ‘계승과 청산도 아니 대전환도 정리나 진상규명을 전제로 하는 것은 백 번이고 만 번이고 맞다. 과거사의 인과관계 속에 갈등과 대립이 없다면 말이다.
과거사정리와 관련된 다양한 특별법의 전략적 목적은 법에서도 제시하고 있듯이 ‘사회통합’과 ‘국론분열의 방지’였다. 아주 훌륭한 목적이다. 하나의 국가 안에 하나의 국민이 있고, 과거사 정리가 필요한 사건들이 분열과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과거사의 원인은 본질상 국민통합이나 사회통합과는 거리가 멀다. 과거사는 반민주 대 민주, 통치세력 대 피통치세력, 지배계급 대 피지배계급 등의 분별적 대립과 갈등으로 발생한 것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그러겠지만, 나는 ‘정리’라는 정책의 전략적 정체성이 무엇일까를 늘 고민하면서도, 그 해답을 쉽게 찾지 못하고 있다. 과거사정리에서 ‘정리’의 딜레마가 항상 괴롭히고 있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그 딜레마를 해소해주길 바랄뿐이다.
첫째, 과거사 ‘정리’는 다양한 현상과 진상들을 논리와 증명 등을 내세워 논리정연하게 보고서로 잘 정리한다는 수준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것일까?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4년 동안 활동한 내용과 결과를 종합보고서에 담았다. 그리고 7개 사항에 관한 17건의 종합권고안도 제시되었다.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구제를 위한 조치, 재발 방지를 위한 국가의 조치, 법령·제도·정책·관행의 시정 및 개폐에 관한 조치, 진실규명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에 관한 사항, 국민화해와 민주발전을 위한 조치 등이었다. 종합보고서의 권고사항만이라도 실제로 추진되었다면,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이미 그 임계점을 넘어서서 정치사회의 후진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있을 것이다.
둘째, 과거사 ‘정리’는 혼돈상태에 빠질 정도로 복잡한 과거의 다양한 현상과 진상들을 특정한 관점으로 질서정연하게 정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다양한 현상과 진상들을 없애버린다는 의미의 단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11,174건이 신청되었고, 그 중에서 8,187건(한국전쟁 전후에 발생했던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 중심)의 진실이 규명되었다. 각종 자료와 증언으로 사건의 전말이 보고서에 잘 정리되었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명예회복과 배·보상의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진실화해위원회가 권고안으로 제시했던 내용, 특히 국민화해나 민주발전과 재발 방지를 위한 법령·제도·정책·관행의 시정이나 개폐는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과거사정리와 관련된 재단을 만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셋째, 과거사 ‘정리’는 과거사의 구조와 행위 주체들을 청산하고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한다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각종의 억압적 국가장치가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민중들에게 폭력을 행사하였다. 과거사정리가 ‘진실과 청산’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작동하면서 민주화를 이끄는 배경이자 성과다. 노동자․민중들의 정치사상의 자유를 탄압했던 국가보안법이나 사회안전법, 집회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았던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상실했던 사법기관과 검찰, 반체제적이거나 반정부적인 사람들을 감시하거나 그러한 사람들의 동향을 파악하는데 주력했던 국가안전기획부나 기무사, 그리고 각종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폭력의 명분을 조작하고 만들었던 언론, 그리고 노동자․민중들의 권리투쟁이라는 이유만으로 불법성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사되는 공권력 시스템 등도 국가폭력을 정당화하는 대표적인 장치들이었다. 이러한 국가장치가 개혁되거나 전환되지 않으면서 과거사‘정리’만으로 과거와 미래를 재구성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혼돈을 나만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리’정책의 딜레마 현상들은 오히려 기억을 재현하기 위한 투쟁이 정당하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상실하는 폭력, 사회구조의 폐해를 방치하는 폭력, 국가권력의 폭력에 대한 침묵과 방관의 폭력 등을 자기 자신과 자신의 후속세대에게 범하는 것이다. 우리들 스스로 ‘분열증적 주체성의 전복’으로 ‘주체의 집단적 동일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 시작은 자신의 권리에 대한 자기 인식이고, 행동하고 실천에서 자존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이든 조직이든, 잊고 있거나 혹은 약화된 분노의 정서를 주체적으로 기억하고, 그 기억들을 새로운 역사화의 소재로 삼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