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국민 사찰과 선거 개입에 분노한다
- 인권시민사회단체, 국가정보원 개혁 요구
1. 국가정보원 직원이 국민을 사찰하고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언론보도를 종합하면 국정원 직원 김모씨와 김씨의 지인 한명 이상이 지난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아이디 십여 개를 번갈아 사용하며 ‘오늘의 유머(오유)’와 ‘보배드림’ 등 인터넷사이트에 여권에 유리하고 야권에 불리한 글 백여 건을 작성했다. 대선후보들의 이름과 정당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4대강 사업, 제주해군기지, 원자력발전소, 금강산관광 등의 정부 정책에 대해 정부, 여당의 입장을 옹호한 반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이나 시민사회단체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타인 글에 남긴 찬반 의사표시도 일관되게 정부, 여당을 옹호했다고 한다. 우리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은 국정원의 국민 사찰과 선거 개입 작태에 크게 분노하는 바이다.
2.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김씨가 게시판에 직접 글을 쓴 적이 없다”던 국정원의 해명에 정면 배치된다. 국정원은 김씨가 직접 글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자 해명자료를 통해 김씨의 글이 “정상적 대북심리전 활동 과정”이며 “인터넷상의 종북활동을 추적,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밝혀진 사실들에 따르면 국정원 직원 김씨가 작성한 글들은 대북 관련 글들에 국한되지 않으며, 대선을 앞둔 시점에 주요 정책에 대한 여론을 호도해 왔다는 점에서 국정원법 9조 ‘정치 관여 금지’ 조항을 위배한 선거개입에 해당한다. 특히 이 직원의 활동이 국정원 공무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는 국정원의 해명과 경찰 진술내용은 그간 국정원이 국민을 사찰해 왔음을 인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3. 국정원 직원이 정부와 여당을 옹호하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를 비판하는 게시물과 찬반표시를 작성한 것은 정상적인 국정원의 업무범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애초에 국내 정보 수집 관련 국정원의 직무를 관련 법률 등에서 매우 모호하고 광범위하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국가정보원법 제3조 제1항에 의해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 작성 및 배포” 권한을 갖고 있으며, 정부조직법, 국가안전보장회의법에도 국정원의 국내외 정보수집 권한이 명시되어 있다. 국내보안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권한은 정보기관이 정치에 관여하는 직접적인 근거가 되어 왔다. 국정원의 정치개입 관련 국내보안정보 수집 권한은 원칙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
4. 경찰의 사건 축소ㆍ은폐 의혹 역시 좌시할 수 없다. 경찰은 대선직전 중간수사결과 발표에서 “대선 관련 댓글은 없었다”고 했다가 게시물 존재를 확인한 뒤인 이달 3일에도 “대선에 대해서는 ‘찬반 표시’만 했을 뿐 글은 올리지 않았다”며 김씨의 정치 관련 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에 대해 공정하게 수사해야 할 경찰이 실체를 파악하고도 축소하는 등 그간 석연찮은 자세를 취해온 것은 경찰 상부와 국정원의 입김이 수사에 작용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정황이 짙은데도 말단 직원 외에 상급자나 윗선 조사가 없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된다. 경찰이 이번 주 발표할 예정이라는 최종수사결과에서는 그간 경찰이 자초해 온 국민적 의혹에 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5. 경찰 수사에 대해 국정원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것은, 경찰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에 대한 정보 및 보안업무의 기획조정 권한이 국정원에 부여되어 있는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 단체들은 국정원의 보안업무 기획·조정권한을 폐지하고 이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로 점차 이양할 것을 주장해 왔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박근혜 당선인이 새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청와대에 ‘국가안보실’을 신설하겠다고 밝힌 사실에 주목한다. 국가안보실이 국정원의 권한을 확대강화하는 명분이 되지 않으려면 국가안보실의 업무와 원칙이 무엇인지 국민 앞에 뚜렷하게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정부조직법개정안에서도 “국가안보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 등의 규정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더욱 명확하게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2013년 2월 5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 진보네트워크센터 / 참여연대 /
천주교인권위원회 / 포럼 “진실과 정의” / 한국진보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