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진실화해위는 2차 가해를 하고 있어요. 피해자를 괴롭히고 명예를 빼앗는 강도가 놀라울 정도예요. 그런 비판 100번 해도 마땅하지만 거기서 그쳐선 안 됩니다.”(김득중 국사편찬위원)
29일 오후 2시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는 이해식·강민정·박주민·윤미향 의원실 등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삼청교육대전국피해자연합회 등이 속한 국가폭력피해범국민연대가 함께 주최한 ‘과거청산을 위한 진상규명의 역사적 의미와 과제 토론회’가 민간인 희생 유족과 피해당사자 등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우경화에 관해 깊은 우려를 표하며 진실화해위의 설립취지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발제자로 참여한 정원옥 문화사회연구소 대표는 “진실화해위가 희생자의 사상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은 또 다른 국가폭력이다. 이렇게 진실화해위 스스로가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법 개정을 통해 이 기구를 계속 운영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발제에 참여한 조영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회장은 “현재 민간인 희생 사건의 경우 신청 사건 1만여건 중 아직도 6000건이 진행 중이다. 형제복지원은 전체 피해자 4만여명 중 490명, 삼청교육대는 3만9472명 중 403건밖에 진실규명이 안 됐다”며 “이렇게 짧은 기간에 수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것과 위원 구성 등 여러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어떤 정권이 오든 진상조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1948년 이래 대한민국의 반인도적 사건과 국가범죄는 굉장히 많아 5년은커녕 10년에도 다 조사할 수 없다. 사람들의 인권의식이 신장하며 갈수록 신청 건수는 늘어날 것이다. 과거사 청산문제가 한발 진전해도 그 다음에 반격을 당하는 한국적 상황에서 진상규명이 지속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상설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려면 규명된 진실을 반복해 외부에 알려야 한다. 이를 대대적으로 국민에게 알릴 수 있는 세부적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관은 현재 진실화해위가 경찰 사찰자료에 근거해 피해자들을 부역자로 모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1970년대 이후 사찰이라는 특정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사료에 대해 역사학계는 진실이 아니라고 본다. 글자로 돼 있지만 믿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1950년 9월 서울 수복 이후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부담을 떨치려고 부역자 처벌을 세게 했는데 재판기록이 하나도 없다. 부역 운운하는 이들에게는 ‘부역 행위를 증명해보라’고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숙 추모연대 진상규명특위 부위원장은 “현재 피해자들은 연로하여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 피해자들이 사라진다면 민간인 학살 등 국가폭력 흔적도 사라지게 된다. 피해 당사자의 운동이 아닌 사회적 과거청산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시민사회 참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한국전쟁기 희생자 유족들은 부역 문제를 성토하며 “김광동 위원장 탄핵의 사유가 차고 넘친다.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호상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상임대표는 “진실화해위가 전남 지역 민간인 학살 사건 등 1391건을 여순사건지원단으로 보내는 바람에 사건 신청인들은 두 기구에서 모두 조사를 못 받게 됐다. 누가 책임질 거냐”고 말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